모두에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을 읽고, 등장인물 관계도

<시선으로부터>를 쓴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등장인물이 무려 50명(정확하게는 51명)이나 등장하는 대작(?) 소설이다. 각기 다른 배경과 성격과 고유의 이야기를 가진 캐릭터를 만들어 낸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처음에는 그냥 읽어내려가다 9번째 인물 쯤에서부터 관계도를 그리면서 읽었다. 다른 인물과 딱히 연결되지 않는 인물들(브리타 훌센, 이수경)도 있었지만, 대부분 크고 작은 관계들로 연결되었는데, 각 등장인물들간의 연결고리를 찾으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찾아내면서 가장 뿌듯했던 부분은 나이지리아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 스티브 코티앙이 입원실 창문에서 손을 흔든 여자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이설아였다는 것!! 소소하지만 따뜻한 연결이다.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안전’인 것 같다. 일단 많은 등장인물들이 대형병원과 연관된 인물이고, 대형 화물차 과적사고(오헌영), 공사현장 산재사고(서진곤), 가습기 살균제사건(한규익의 큰 누나)의 피해자들이 등장하며, 마지막 사건도 부실공사로 인한 극장 화재사건이다. 가스라이팅이나 데이트살인, 낙태, 생활고로 인한 동반자살의 문제도 등장한다. 마지막 <소현재> 편에서 조금이나마 주제의식이 드러나긴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치기보다는 일상 속의 불행을 겪는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에 중점을 둔다.
나는 50개의 이야기 중 <정다운>편이 가장 마음이 아렸고, <김혁현>편은 엄마미소를 짓게 되었다. 가장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본받고 싶다고 생각한 건 <이설아>였다. 어느새부터인가 내 삶의 모토가 ‘강강약약’이 되었는데, 전근용 교수의 시대착오적 발언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으며서도 해바라기 센터의 운영자로서 자신의 강인함을 나눠주는 설아와 닮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
👩🏻⚕️ 유라는 길을 걷다가 유난히 불행을 모르는 듯한, 웃음기를 띤 깨끗한 얼굴들을 공격하고 싶은 기분이 되곤 했다. 왜 당신들은 불행을 모르느냐고 묻고 싶었다. 어리고 젊고 아직 나쁜 일을 겪지 않은 얼굴들이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는 건 비틀린 위로였다(장유라, p57).
👩🏻⚕️ 그저 중년이 되자 문득 두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호재가 계속될 리 없었다. 인생이 이렇게 행운으로 가득할 리 없다. 내가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으면 뭔가 불행한 일이 닥칠 것이다(이호, p142).
👩🏻⚕️ 소년의 꿈이 이루어지는 건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다. 그걸 깨달은 건 소년기를 한참 벗어나서였지만 말이다(최대환, p286).
👩🏻⚕️ 하품이 옮는 것처럼 강인함도 옮는다. 지지 않은 마음, 꺾이지 않는 마음, 그런 태도가 해바라기의 튼튼한 줄기처럼 옮겨 심겼다(이설아, p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