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의 <최소한의 선의>를 읽고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문유석 작가님의 따끈따끈한 신작이다(작가님이 퇴임하시기 전 젠더법학회에서 강연 비스무리하게 하신 걸 휴가 일정이랑 겹쳐 못 가본게 천추의 한이다). 헌법이 추구하는 근본 가치들을 되짚어 보며 법치주의적 사고방식을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와 논쟁들에 대해 작가님만의 대답을 제시한다.
책의 제목 ‘최소한의 선의’란 법 혹은 헌법을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덕 시간에 법을 ‘최소한의 도덕’이라 배웠는데, 작가님은 이를 ‘최소한의 선의’라고 명명하신다. 사회에서 공존을 하기 위하여 인간들에게 적어도 이 정도의 선의는 필요하다는 뜻이다. ‘도덕’이라는 용어가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당위적인 용어라면, 선의는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는 용어이다. 필연적으로 감정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인상 깊은 부분은 작가님이 현재 우리 형사재판절차에서 ‘범죄에 대한 분노’나 ‘응보의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논리적, 이성적이고 교화의 관점에서만 형벌을 대하는 것에 대해 사뭇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신다는 점이다. 형사 판결문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 괴리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관한 명쾌하고도 정확한 설명인 것 같다. 나도 법원에서 일을 하면서 ‘도대체 왜 법이 피해자 편을 들지 않고 가해자 편을 드냐, 법이 너무 관대하다’라는 질문에 여러 방면으로 많이 마주하게 되는데 20년 넘게 판사 생활을 하신 분의 고민과 그에 대한 본인만의 대답이 들어간 답변이라는 점에서 매우 인상깊었다(나도 추후 이러한 질문을 마주하게 되면 작가님의 대답을 인용하게 될 것 같다!).
그동안 내가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개개인의 자유를 제한, 나아가 침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얼마나 안이한 태도를 갖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책이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단순히 기존의 국가권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거대기업, 다수의 군중 등에 의한 개인의 자유 억압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전통적인 논법 - 예를 들면 표현의 자유-에 따라 이러한 침해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고민해보게 되었다.
더 알아보고 싶은 것들이 많이 생긴 책이기도 했다. 일단 보수성향과 진보성향이 뇌과학에서 비롯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무조건 찾아볼 것 같다. 나아가 타임뱅킹(time banking)과 디지털 사회 신용(DSC), 앤드루 양(Andrew M. Yang)에 대해서도 더 깊게 공부해보고 싶어졌다.
⚖️ 자유에 대한 제한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결국 자유를 잃게 될 것이다. 누군가 일견 철없어 보이고, 낯설고,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가치 없어 보이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해도 가벼이 넘기지 말고 그의 주장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이다(p120).
⚖️ 법은 범죄자들에게 관대한 것이 아니다. 법이 인간에게 관대하게 만들다 보니 범죄자들이 반사적 이익을 누리게 된 것이다(p144).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형성된 서구의 근대적 헌법의 시각에서 벌이란 자유에 대한 제한이고, 그렇기에 다른 국가 작용처럼 필요최소한이어야 한다(p146).
⚖️ 세상의 갈등 모두가 선과 악의 대결, 또는 정의와 적폐의 대결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외로 그중 많은 경우는 선의와 선의의 부딪힘이기도 하다(p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