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의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가상의 동네 서영동에 거주하는 7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집'에 관한 소설이다.
2월 중순에 읽기 시작했는데 첫 번째 파트를 다 읽기도 전에 답답한 느낌이 들어 2주간이나 묵혀 두었다. 너무 하이퍼리얼리즘이라 그런가.. 책 속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이 마치 나의 안 좋은 면(특히 속물적인 면)을 담아둔 것 같아 한번에 읽어내리기엔 불편했다.

한국 사회에서 집 혹은 아파트란 재산 증식의 수단이자 소유주 혹은 거주자의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기도 하며, 지난 노력에 대한 보상, 자신이 삶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믿음의 표상이다. 어떤 이에게는 마치 자신의 모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파트 가격을 올리기 위해 입주자대표회의 대표로 1인 시위를 밥 먹듯이 해 '블랙 컨슈머'가 된 아버지를 보며 본인에게 아파트는 그저 주거공간이라고 선을 긋는 보미도 남동생에게만 아파트를 증여해줬다는 부모님에게 서운해하며 화를 낸다. 희진은 층간소음으로 가족이 메말라가는걸 느끼면서도 지나간 세월을 부정당한다는 생각에 이사를 가지 못한다. 왜 우리 사회는 집에 이렇게나 과도하게 많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나.
속물적인 사람들과 선을 그으면서도 돌아서서는 상대방이 자신보다 넓은 평수에 사는지,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변호사가 됐을리는 없을텐데 직업이 뭐길래 본인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지 궁금해하는 은주. 실은 누구보다 남들 시선과 평가를 신경쓰고 본인의 딸이 다른 아이들보다 세심한 케어를 받길 원한다. 결국 타인의 시선을 가장 의식하는 것이 은주가 그토록 선을 그으려던 다른 엄마들이 아닌 본인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속한 그룹의 사람들을 닮아간다.
여러 모로 흥미로운 소설이고 어렵지 않게 읽히는 책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에도 현실 세상 어딘가에서 서영동 사람들이 실존하고만 있을 것 같다.
🏢 대체 '그런' 여자는 어떤 여자고 '그렇지 않은' 여자는 어떤 여자인데(샐리엄마 은주, p109)
🏢 하루하루 재미있고 만족스럽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모이면 불안이 된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오늘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연말이면 아무 성과 없이 또 1년이 갔구나 한심한 것이다(이상한 나라의 엘리,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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