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이슬아 작가를 알게 된 건 정태일 작가의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다. <일간 이슬아>에 대한 소개와 함께 요새 가장 핫한 작가라는 평을 읽고 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네이버에 이슬아 작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작가 홈페이지에서 본인을 ‘연재노동자’라고 소개하는 것을 본 순간 범상치 않은 작가임을 느꼈고 그 후 들른 서점에서 이슬아 작가의 신작임을 보고 바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슬아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과 글쓰기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져 버렸다.
<부지런한 사랑>은 이슬아 작가가 글쓰기 교사로서 본인의 글방에서 가르치고 배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상깊은 부분은 역시 글방에서의 에피소드들이다. 이슬아 작가가 던진 글감에 대해 아이들이 각기 다른 생각을 펼쳐놓은 글을 읽는 것도 흥미롭고 아이들의 글쓰기를 이리저리 유도하는 작가의 노력에 대해서도 감탄하게 된다. 아이들을 쓴 글을 모아 책으로 편집해 선물한다는 부분까지 읽고 나면 다 큰 성인도 글방에 참여할 수는 없는지 궁금해진다.
다른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재능과 꾸준함과 관련한 작가의 생각이다. 연재노동자로서 직업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내가 로스쿨을 다니면서 법학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과 놀라우리만큼 닮아있다. 나도 내가 재능이 있는지 궁금했다. 재능이 있다면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라도 열심히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차마 재능이 없다고 믿고 싶지 않아서 그냥 있을 것이라고 믿어 버렸다. 나의 믿음은 숱한 역경과 고난에 부딪혔고, 아직도 부딪히고 있다. 이슬아 작가처럼 재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꾸준함의 막강함을 깨닫게 되는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가 잘하고 있는건지 성장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조차 없다. 언젠간 나도 내 직업에서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스물아홉살인 지금은 더 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p24)."
"그렇지만, 그렇지만... 누군가가 나의 무언가를 재능이라고 말해주어서 그것을 덥석 믿어버리고 싶었다.
꼭 운명인 것처럼 만들고 싶었다(p165)."
작가는 아니지만 생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부지런한 사랑>을 읽으면서 취미로서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학부 재학 당시 내 기말고사 답안지를 채점한 조교 선배는 내 답안지를 어떤 선배의 답안지와 비교하면서 이렇게 평가했다. ‘네 답안지는 점수 주기에는 좋은데 열정이 없어. 반면 OO이 답안지는 점수 주기에는 부족해도 한 문단 한 문단마다 자기 생각으로 꽉 차 있지.’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 아직은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만의 생각이 없는, 점수를 받기 위한 기계적 답안지라는 나름의 혹평에도 ‘오빠 맞아요. 제 답안지에 제 생각은 단 한 줄도 없어요.’라며 웃으며 넘겨버렸다.
그런데 학부를 졸업한지 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정답이 없는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럽고 자신이 없다. 특정 사안에 대하여 독자적인 견해를 표명할 정도로 깊은 사유를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날마다 변화하는 나의 생각을 고정적인 글로 표현했을 때 오는 생각의 고착화, 늘 이성적, 객관적이어야 하는 글을 쓰는 직업에서 오는 표현 방식의 한계 때문인 듯하다. 이에 완벽하지 못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불안함까지 합치면 어느 정도 나의 문제점에 대한 진단은 이루어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30 before 30 리스트>에 ‘블로그 시작해서 30편 이상 글쓰기’가 포함된 것은 글쓰기에 대한 줄어들지 않는 열망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스쳐지나가는 나의 상념과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잊혀버리는 나의 일상을 포착해 글로 남기고 싶다는 소망, 나도 모르는 내 생각을 글을 쓰면서 조금씩 알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자그마한 기대가 합쳐져서 나로 하여금 이렇게 글을 쓰게 한다. 어느덧 이 열망은 나의 두려움을 이기고 나를 컴퓨터 앞에 앉힌다.
글을 쓰다보면 늘 끝맺음을 할 수가 없다. 모든 글에는 교훈이 있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하고 틀에 박힌 사고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이 완성되면 블로그에 게재되어 돌이킬 수 없다는 압박 때문일 수도 있다. 마무리를 짓지 못해 사라진 수많은 글들과 이 글이 다른 운명을 맞게 된 건 이슬아 작가가 너무나도 자신 있게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재능이 꾸준함을 이길 수 없다고 장담한 덕이다. 나와 같은 걱정을 했던 작가가 노력과 고민을 거치고 얻어 낸 결론인 만큼 믿고 싶어졌다.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든 취미로서의 글쓰기든 언젠가 나도 재능이 꾸준함을 이길 수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이 글이 나의 꾸준함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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