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티비 제작 드라마 <파친코>의 원작소설. 일제강점기였던 1932년 결혼을 하면서 오사카로 이주한 선자와 그 후손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가 4대에 걸친 선자의 집안 인물들과 그 주변인들의 삶을 따뜻하면서도 덤덤하게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소설 전반부의 주인공 선자는 “삶은 고통이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말에 부합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 소설 후반부 주인공 솔로몬은 어떤 인물인지, 그를 통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분명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전반부보다 후반부 힘이 약하다.
가장 인상깊은 인물은 노아이다. 노아는 주변의 멸시와 핍박, 질투에도 공부에 매진해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지만 고한수가 자신의 아버지란 사실을 알게 되자 대학을 중퇴하고 은둔한다. 일본인으로 행세하며 파친코에서 일하고 가정을 이루지만 선자, 고한수와 재회한 후엔 자살한다. 세상의 핍박에도 그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존경받는 선한 백이삭의 아들이라는 자부심이었던 것 같다. 그게 부정되는 순간 더 이상 조선인이기 때문에 받은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 성인 노아의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는데 다음 시즌에 나올 노아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원작소설이 있는 드라마가 으레 그렇듯이, 드라마보다는 소설이 더 재밌었다. 그렇지만 드라마의 캐스팅은 정말 찰떡인듯… 특히 이민호가 고한수 역에 너무너무너무너무 잘 어울렸다.
💰 역사가 우릴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1권 p11)
💰 몸이 불편했던 아버지는 자기보다 더 가난하게 자란 엄마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는 하숙집 사람들에게 식사를 준비해주고 난 후, 세 식구가 나지막한 상 앞에 앉아 다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아버지는 여자들보다 먼저 먹을 수 있었지만 늘 함께 먹겠다고 했고, 다른 집 남자들처럼 상을 따로 차려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엄마가 자기만큼 고기와 생선을 먹고 있는지 확인했다. 여름에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수박을 먹여주겠다고 수박밭을 일구었고, 매년 겨울이 돌아오면 가족들이 입을 외투 안에 채워넣으라고 깨끗한 솜도 잊지 않고 사 두었다. 아버지는 혹시 솜이 부족하면 자기 옷에는 솜을 새로 채워넣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1권 p117).
💰 모자수는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희망의 여지가 남아있는 게임에 손님들이 빠지는 이유를 모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2권 p95).
💰 노아는 아키코의 표본이 되고 싶지 않았다(p106) (중략) 노아를 좋든 나쁘든 그냥 조선인으로 보는 것이 나쁜 조선인으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모를테니까. 아키코는 노아의 인간성을 볼 수 없었다. 노아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가장 원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조선인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 되고 싶었다(2권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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